여전히 수중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전두환이 아직도 버젓이 고개 뻣뻣히 들고 있으며 (그 아들 전재국이 씨발 시공사 대표이사인데다가 그 쉑 재임당시에 형 전기환이 노량진수산시장을 인수했었고, 동생 전경환이 새마을운동 중앙본부회장을 지냈는데 수중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개쉑!)
그리고, 당시 전두환과 짝짜꿍이 잘 맞았던 노태우. 전두환 다음 차례로 대통령을 해 먹었던 그의 사위...............과연 그 사위는 누굴까요.
최태원이랍니다. SK그룹 회장. 그 최태원
ㅋㅋㅋ 쓴 웃음 밖에 안나오네...ㅉㅉ
광주민중항쟁으로 탈취한 기득권을 여전히 그 세력이 이득을 가져가고 있는거죠. 훗
영화 덕분에 오래간만에 정치관련 포스팅을 해보네요.
이 처럼 아직 대한민국 현실안에서 이 영화 존재 자체가 뜻 깊은 영화이지만,
영화만 보자면 한때 영화광을 자처했던 내가 보기에는 그저 태극기휘날리며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내가 광주사람이었다면 다른의미로 다가올 수 있었을까?
외부인도 아니고 내부인도 아닌 시선으로 담은 영화는 참.....ㅠㅠ
이런 현실이지만, 당시 희생자 여러분과 순수하게 민주화를 위해 뛰었고, 지금도 뛰고 있는 많은 분들께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박정희 죽고나서 정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군부가 구테타를 일으킨거야. (성공한 구테타는 구테타가 아니네 어쩌네 한건 그 당시 나온 이야기) 박정희의 오랜 독재에 좀 벗어나나 싶었는데 또 군부 독재자가 나올꺼 같으니까. 당시 대학생들을 비롯하여서 전국에서 들고 시위를 들고 일어 나고 있었는데. 전두환이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거지. 그래도 씨발 전두환 물러가라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당시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기 시작했는데 전두환 이 개쉑이 탄압을 시작한거지.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하기 힘든 진압봉 탄압은 정말 잔인했던거로 유명해. 서울로 올라가서 뭉치려고 했던 대학생들이 계엄령으로 인해 서울로 올라갈 길이 막히자 1980년 5.18일 각지역에서 시위를 일으키기로 전국대학생 연합회에서 결정했는데...
전두환의 졸라 위협적인 시위진압에 겁먹은 몇몇 지역에서는 아예 뭉치지 못했고 몇몇 지역에서는 매우 소수가 모였었나봐, 그 중 나름 꽤나 큰 규모로 뭉친 전남대앞 시위대에게 당시 계엄군으로 파견되어 있던 공수부대가전격 투입되었거든.(이게 바로 작전명 '화려한 휴가') 사상자가 꽤나 나오는 와중에 그 진압을 피해 시내로 도망치는 대학생들은 물론 일반시민에게도 그 들의 진압봉은 멈추지 않았던거지, 당시 사진들을 찾아보면 정말 끔찍한데. 여기에 올리기 무서울 정도야.
광주가 당시 별로 큰 도시도 아니었는데. 누가 쓰러지고 누가 죽고 그러면 한두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거니까. 진짜 말 그대로 내 동생이 죽고, 내 형제가 죽은 그런 상황에서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어.
광주 시민들이 진짜 제대로 들고 일어난거지.
그렇게 20만 가까운 시민이 도청앞 금남로에 모였는데.
졸라 수세에 몰린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네.
그런데 그것에 굴하지 않고 시민들은 시민군을 만들어 대항했다는거야. 졸라 ㄷㄷㄷ 하지. (물론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고, 숨어 있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광주 이외의 곳과는 교통은 물론이고 통신마저 완전히 두절된 고립되어버린 상황에서도 끝까지 저항하던 시민군을 씨발 전두환과 그 똘마니들이 진짜 군대와 군의 무기를 이용해서 대향학살해버린거 그게 바로 광주 민중항쟁인거야.
당시는 물론이고 그 이후 계속 전두환의 딸랑이 노릇을 하던 언론사를 비롯하여 여러 단체들 그리고 기득권세력들의 자기 지키기 덕분에 굉장히 오랬동안 저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거.
당시 에피소드들은 진짜 한사람 한사람 눈물 나.
간간히 만들어졌던 다큐 찾아보면 진짜 슬퍼지거든.
광주민주화운동은 신군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지만,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세계 민주화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
Recent comment